“부채비율 연연하지 않고 공기업 소임 다할 것”
평소와 달리 거침없이 현안에 대해 목소리 높여
입찰 조달청 이관 업무 차질 우려… 재고 여지 둬
‘철근 누락’ 수세에서 경기 침체 역할론에 입장 변화
평소 스타일 감안하면 정부와 사전교감 분석도

20일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한준 LH 사장은 부채비율에 연연하지 않고 공기업 소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일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한준 LH 사장은 부채비율에 연연하지 않고 공기업 소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LH 부채비율 목표치 208%는 잘못된 재무구조…부채비율 문제있어도 소임 다할것”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부채비율 208%를 맞추는 것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LH를 위한 것”이라며 “부채비율에 연연하지 않고 공기업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공주택 건설의 설계·시공업체 선정 권한을 조달청으로 넘기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조달청으로 이관됐을 때 정부 정책이 차질 없이 이행될 것인지, 퀄리티 컨트롤(품질 관리)이 제대로 될 것인지에 대해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며 재고의 여지를 두었다.

이한준 장이 새해를 맞아 20일 출입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나온 얘기들이다.

그동안 김포 아파트 주차장 붕괴사고 등 사이런저런 이유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정부 방침에 순응했던 지금까지와 달리 작정하고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이다.

표현은 다소 과격하게 비쳐졌지만, LH 안팎에서는 부채비율과 조달청에 입찰권한을 넘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경남 진주혁신도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옥 전경
 경남 진주혁신도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옥 전경

먼저 부채비율의 경우 일반 기업들이 하지 않는 영역이나 국가기간산업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공기업에 부채비율을 낮추라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면이 없지 않다.

특히 LH의 경우 택지개발 등에서 선투자를 수반한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경기 부양을 위해 총대를 매다시피 했다.

부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현장 인수나 3기 신도시 조성이라는 중차대한 미션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부채비율을 208%로 맞추라고 하는 것은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장은 “기획재정부가 2027년까지 LH의 부채비율 208%를 목표로 정했는데, 이는 잘못된 재무구조”라며 “정부와 협의해 LH 특성을 반영한 재무구조 이행 시스템을 만들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신도시를 발표할 때 언제까지 보상을 마치고 언제 착공하겠다고 약속하지만, LH로 오면 속도가 늦어진다”며 “그 이유는 정부가 정한 부채비율을 맞추기 위해 보상 시기를 전부 뒤로 늦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채비율과 관련해서는 직원들도 불만이다. 부채비율을 맞추지 못하면 경영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성과급 등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부동산 투기와 철근 누락 등으로 연이어 낮은 경영평가 점수를 받은 LH로서는 사실상 달성 불가능한 부채비율 208%까지 겹쳐 성과급 기대조차 하지 못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20일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한준 LH 사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LH 제공
20일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한준 LH 사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LH 제공

그렇다고 부채비율에 연연해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사정을 이한준 사장이 이번 기회에 털어놓은 것이다.

앞서 기재부는 지난해 6월 말 LH를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하면서, 2022년 218.7%인 부채비율을 오는 2027년까지 208.2%로 낮추는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을 제시해 실행 중인 상태다.

주요 입찰권한을 조달청으로 넘기는 것도 사실,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동안 LH가 바로 하던 것을 LH를 거쳐서 조달청에 가고, 그 결과를 LH가 다시 평가는 구조여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조달청도 인력이 여의치 않아 LH 입찰업무 인력 수급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LH혁신안을 만들 때부터 우려되던 사안이었지만, 이제서야 문제를 깨달은 것이다.

이 사장은 이날 청년·신혼부부와 저소득층을 위한 LH 매입임대사업의 지난해 실적이 저조한 것과 관련, 이번 주 중 준공주택에 대한 매입 기준을 다시 완화해 매입 공고를 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LH 매입임대주택 매입 실적은 서울 강북구 ‘칸타빌 수유팰리스’ 고가 매입 논란으로 ‘원가 이하’ 금액으로만 주택을 매입하도록 제도를 바꾸면서 급격히 떨어졌다.

이 사장은 “현장에 직접 가보니 저라도 그 돈으로 그 집은 안 살 것 같았다”며 “건설사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투자를 했다가 분양도 임대도 안 돼 넘기는 것을 감정가에 매입하는 게 국민 눈높이에 맞냐는 측면에서, 건설사가 적정한 손실을 봐야 한다는 게 제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준공 후 미분양 주택 매입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깊게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 사장의 이날 발언은 작심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자간담회를 빌어서 현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의 성경에 비추어봤을 때 이날 발언이 정부와 어느 정도 교감이 이뤄진 상태에서 나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LH는 그동안 철근누락 등으로 운신의 폭이 좁았지만, 정부로부터 3기 신도시 조성이나 경기부양에 대한 역할이 주어지면서 부채비율 등에 대한 조정 등에 공감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지 않다면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서울 내 ‘알짜자산’을 포함한 전국 15조원 규모 자산을 현금화해 임기 중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밝혔던 이 사장이 입장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어떻든 이한준 사장의 이날 발언이 어떻게 정부와 조율과정을 거쳐 결실을 맺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공사이는 이 공직자의 사는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저작권자 © 공생공사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